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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는 고려인 공동체를 단숨에 유랑민으로 만들었다. 국경을 넘을 선택권도, 돌아갈 땅도 허락되지 않은 채 화물열차에 실려 떠났던 그 세대에게 유랑은 비극이자 숙명이었다. 낯선 황무지에서의 정착은 생존의 문제였고, 노동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언어였다.
그리고 한 세기가 흐른 지금, 그들의 후손들이 또다시 유랑민이 되어 이동하고 있다. 이번에는 총과 명령이 아니라, 생계와 미래라는 이름으로.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활동 중인 김 블라디미르 시인의 삶은 이 ‘이중 유랑’의 현재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 〈배 과수원에서〉는 1930년대 강제이주 세대의 기억과, 오늘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노동자로 살아가는 후손 세대의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태어난 시다.
제목 :배 과수원에서
나는 기쁨과 상쾌함을 느낀다네, /배 과수원에서 하는 모든 일에서./ 여기는 의심할 바 없이/ 해가 비치고 공기가 맑다네./ 한국의 과수원에서 난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다네. /우리는 꿀벌처럼 모든 꽃을 수분시킨다네. /얼마나 수확하느냐는 우리의 노동에 달렸어라!/ 사장님이 우리에게 친절하게 이야기하네,/ “유심히 살펴보고 빠짐없이 하십시오.”/ 하여 우리는 큰 열정으로 열심히 일 하네/ 오늘 우리의 노동이 성과를 가져오도록./ 이해를 가지고 진심으로 노동하시게,/ 본인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기쁨을 얻는다네!/ 배 과수원에서 하는 일에서./ 여기는 해와 맑은 공기가 상쾌함을 준다네! /푹푹 찌고 무더운 도시와는 다르게
강제이주 1세대에게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었다. 이름과 언어, 직업을 박탈당한 채 중앙아시아 집단농장에 던져진 그들은, 쌀과 면화를 심고 수확하며 공동체를 유지했다. 그들의 노동에는 슬픔이 있었지만, 동시에 공동체를 살리는 책임과 연대가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일했고, 함께 버티기 위해 일했다.
반면 오늘의 고려인 후손들은 ‘조상의 땅’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이동했지만, 그 땅에서 단지 외국인노동자로 분류된다. 김 블라디미르 시인 역시 한때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문학대학 교수로, 의과대학 러시아어문학과 학과장으로 30여 년간 강단에 섰던 지식인이었으나, 지금은 외국인노동자로서 광주 인근 공장과 농촌 현장을 오가며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잇는다. 사과와 배, 감을 따고 배추와 무를 수확하는 그의 하루는, 강제이주 세대가 겪었던 노동과 닮아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고립을 품고 있다.
〈배 과수원에서〉가 인상적인 이유는, 이 반복되는 유랑의 비극을 고발의 언어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은 말한다. “노동을 통해 삶에 다가간다”고, 그리고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많은 것들이 조금씩 가까워진다”고. 이는 1930년대에도, 2020년대에도 유효한 문장이다. 강제이주 세대에게도, 오늘의 외국인노동자로 살아가는 후손들에게도 노동은 삶에 접근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시 속의 화자는 자신을 “꿀벌처럼” 꽃을 오가며 수분하는 존재로 비유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다. 중앙아시아 집단농장에서 황무지를 일구던 선조들처럼, 오늘의 고려인 노동자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실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도 있다. 1세대의 노동이 집단과 공동체를 향했다면, 오늘의 노동은 철저히 개인화되어 있다. “얼마나 수확하느냐는 우리의 노동에 달렸다”는 문장은 책임의 언어이자, 동시에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암시한다.
이러한 정서는 1930년대 고려인 시인 김남석, 윤수찬, 명월봉의 문학에서도 반복되어 왔다. 김남석이 강제이주의 원초적 상실을 절제된 언어로 남겼다면, 윤수찬은 집단적 기억과 연대의 흔적을 기록했고, 명월봉은 유랑민의 내면과 노동의 고독을 응시해 왔다. 김 블라디미르의 시는 이 흐름 위에서, ‘또 다시 유랑하게 된 후손의 노동’이라는 오늘의 현실을 가장 담담하게 증언한다.
이 시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1930년대에 강제로 밀려났던 사람들이 유랑민이 되었다면, 오늘 우리는 왜 그 후손들을 또다시 유랑민의 자리로 밀어내고 있는가. 조상의 땅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외국인노동자로 분류되는 현실 속에서 고려인 후손들의 노동은 어디로 귀속되는가.
〈배 과수원에서〉는 과거를 회상하는 시가 아니다. 이는 지금, 이 땅에서 반복되고 있는 유랑의 구조를 비추는 거울이다. 김 블라디미르 시인의 시는 외치지 않는다. 다만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한 번의 강제이주로 끝났어야 할 유랑이, 왜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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