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을 맞아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지난 1일부터 열리고 있는 ‘고려인한글문학 기획전’이 국내외 인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감동을 전하고 있다.
특히 이번 기획전의 핵심 내용인 ‘쌀이냐 책이냐’는 고려인 디아스포라 역사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하며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소유의 삶이냐 존재의 삶이냐?’ 라는 부제를 달고 선보인 이 전시는 1937년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될 당시,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던 삶의 방식을 조명하고 있다.
당시 다수의 고려인들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 ‘쌀’을 선택해, 먹을거리와 재산을 챙겨 열차에 올랐다. 반면, 일부 고려인들은 “우리의 정신적 나침반은 책‘이라고 믿고 주변의 온갖 비난과 조롱속에서도 책과 문서, 활자를 가슴에 품은 체 새로운 길로 나섰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부류의 고려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려인 공동체를 일구었다. 쌀을 들고 떠난 이들은 척박한 중앙아시아 황무지를 개간하고 씨를 뿌려 풍요로운 수확을 이루어냈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공동체의 물질적 기반을 다졌을 뿐 아니라, 책을 들고 온 동포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문화와 교육의 불씨를 이어가도록 지원했다.
한편, 책을 선택한 고려인들은 초기에는 극심한 빈곤과 고난을 겪었지만, 모국어와 한글문학, 전통 예술을 지키며 고려인들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었다. 학교, 신문사, 극장 등지에서 모국어 교육과 작품 창작, 연극 공연을 이어가며, 디아스포라 뿌리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 공동체로서 자긍심을 일깨웠다.
결국, 쌀과 책, ‘소유의 양식과 존재의 양식’ 두 축 모두가 고려인 사회를 지탱해 온 원동력이었다. ‘쌀이냐 책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닌, 두 가지 모두가 필요했음을 역사가 증명해 준 셈이다.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은 “이번 기획전은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가치와 교훈을 전하기 위한 자리” 라며, “쌀과 책, 삶과 문화의 균형이 어떻게 공동체를 지탱해왔는지를 함께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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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소유의 삶이냐 존재의 삶이냐? 부제를 단 문장에는 원동(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이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될 때, 다수는 불확실한 미래를 보장해 줄 최후의 수단으로 오직 (쌀)이라 여기고 당장 물리적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재산을 가지고 열차에 올랐다.
소수의 다른 고려인들은 어두운 밤하늘에 길잡이별이 되어 줄 것은 (책)이라 확신하고 주위의 비난과 비웃음 들으면서도 고집스럽게 책과 활자와 서류를 들고 열차를 탔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쌀을 가지고 들어온 이들은 억척스럽게 황무지를 개척하여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가을에 풍성히 거둠으로써 고려인사회를 빠르게 안정시켜나갔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책을 사랑하느 괴짜 동료들이 물질적으로 고통받지 않고 뜻하는 일에 종사할 수 있도록 무수히 많은 도움을 베풀어 주었다.
책을 가지고 들어온 이들은 이주 초기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낯서 땅에서 한글문학과 모국어 문화예술을 소중히 지켜나갔다. 그들은 학교와 신문사와 극장에서 모국어를 가르치고 작품을 쓰고 연극을 공연함으로써 쌀을 가지고 들어온 이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그들을 바람직한 민족문화 공동체로 인도했다.
이 두부류릐 고려인들은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오늘의 고려인사회를 만들어 왔다. 쌀과 책 즉 소유의 양식과 존재양식은 디아스포라 고려인사회를 이끌어온 거대한 수레의 양대 축이었다. 그러므로 고려인강제이주사, 나아가 고려인 전체이주사를 놓고 누군가가 쌀이냐 책이냐? 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아마도 쌀도 책도 둘다 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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