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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日帝)때 만주로 간 사람들은 조선족이고 연해주로 간 사람들은 고려인이다. 고려인동포는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의 시기에 농업이민, 항일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러시아(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자 들로서, ‘고려인’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몰도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등 독립국가연합 내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들의 총체적 용어로, 러시아어(語)로는 ‘카례이츠이’라고 하며, 고려인 또는 고려족이라고 부른다.
연해주땅에 씨앗을 뿌리고, 항일독립운동 전개
한국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 농민 13세대가 한겨울 밤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서 우수리강(江) 유역에 정착했다. 이어 1865년(고종 2년)에 60가구, 그 다음해에 100여 가구 등 점차 늘어나 1869년에는 4,500여명에 달하는 한인이 이주했다.이후로도 이민은 계속되었고, 대부분이 농업이민으로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망명 이민의 근거지가 되었다.- 고려인의 이주과정
- 1863년 연해주 포세트지역 한인 13가구 최초 기록
- 1863년 한인 연해주 이주 시작
- 1867년 185가구 999명
- 1869년 한반도 북녘 대기근으로 이주 급증(1만 명 급증)
- 1902년 한인 이민자수 32380명
-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후 의병 기지화
- 1908년 의병건수 1451건 참가인원 69,800여명
- 1910년 경술국치 후 한인 이민 급증
- 1914년 교민 수 63,000명으로 신한촌 건설 (블라디보스톡)
- 1918년 일본군의 연해주 점령
- 1922년 10월 일본군 연해주 철수, 친일 거류민단 5,000명과 함께 귀국
- 1923년 재소 한인 공식 10여만 명 거주. 실제 25만 명 이상 거주
- 1937년 (9월 21일~11월 15일)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한인들 전원 중앙아시아(6천㎞) 강제이주 당함
- 스탈린의 강제 이주, 중앙아시아의 황무지개척…
- 1931년 스탈린은 일본군이 연해주 침략을 위해 한인들을첩자로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한다는 소문이 돌자 이를 구실로 삼아 1937년 고려인을 포함한 소수 민족에 대한 강제 이주정책을 실시하여 지식인은 처형하고 예고 없이 화물차와가축운반 차를 개조한 차량에 짐짝처럼 실어 매서운 시베리아의 삭풍 속에 중앙아시아에 버렸다. 낮선 땅에 도착한 이들은 살기 위해 토굴을 파고 한민족의 강한 생명력으로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개척하고 한인 집단 농장을 경영하는 등 소련 내소수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잘사는민족으로 뿌리내렸다.
- 또다른 시련, 새로운 희망의 꿈을 꾸다…
- 그러나 1992년 1월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외에 14개 독립국가로 분리 되면서 고려인들이 거주하는 국가에서는 배타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되어 직장에서 추방 당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어 다시 연해주 지방으로 모여 들었으나 연해주마저 어려움에 처하자 조상의 땅 한국으로 입국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있다.